마을자원조사 3조
2022-09-022022년 한해 여름은 처인구로 기억될 듯하다.
용인으로 이주한지 4년 차. 죽전과 수지, 탄천을 벗어나면 여전히 새로운 동네였다. 이사 온 첫해에는 집 가까운 곳을 걸어 다니며 기웃거린 게 전부였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서 이번 마을조사원 모집이 반가웠다. 특히 처인구라니. 아직 가보지 못한 곳. 용인시의 거의 70%에 해당한다는 넓은 땅. 직접 다닌다고 하니 반가웠다. 다만 차가 없는 상태라는 점이 좀 우려되긴 했다.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할 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어디든 닿는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과연 그게 실제 가능할까 염려가 없진 않았다.
실제 해보니 처인구의 일곱 개 마을 행정복지센터까지 가는 버스는 죽전 이마트 앞이나 용인시 터미널에 다 있다. 일반버스도 있고 빨간색 광역버스도 있고 특히 남사면 같은 곳은 출퇴근자를 위한 버스도 있어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행정복지센터 방문은 겨우 시작일 뿐 그 뒤 이루어지는 모든 조사는 이동의 연속으로 차량 없이는 불가능했으니까. 파트너였던 정미씨와 유경씨께 크게 감사드린다. 더운 여름 멀고 험난한 운전까지도 도맡아야 했던 두 사람 덕택에 수월하게 조사활동을 마칠 수 있었다. 두 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잘 마쳤습니다.
각 행정복지센터에는 우리 마을조사원이 활동을 시작하는 시점에 관례적, 행정적으로나 인사차 꼭 방문하는 게 마땅하다 여겨지긴 한다. 마을 이장님들의 연락처를 주고받는 과정에서도 필요한 절차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실질적인 이유 아닐까 싶다. 마을 현황 즉 리 단위 경계가 표시된 지도라든가 인구현황 같은 자료를 네 개 조사팀마다 각각 대면으로 얻는다는 것은 번거롭고 중복되는 일로 비효율적일뿐더러 담당자 입장에서는 바쁜 와중에 귀찮은 일일 수 있었겠다. 각 행정복지센터마다 사정이 달라 담당자가 전혀 무관하거나 무관심인 경우가 있었다. 물론 전혀 무관하다는 말도 무관심하다는 말도 주민의 입장에서는 어불성설이긴 하다. 자료는 유선으로 받을 수 있겠지만 대면 인사는 필요하고. 이번엔 처음 하는 사업에 따르는 절차와 번거로움이라 정리하면 되겠다.
각 마을에 대해서 미리 사전조사가 필요했다. 센터에서 준비한 자료를 일별했고 주로 인터넷 구글링을 했다. 우선 지도, 도로와 지형, 웬만한 문화역사유적지는 지도상에 표시되어있었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60세 전후 이장님 중 오래 하신 분 위주로 연락하여 일정을 잡았다. 처음 마을 조사 사업이 왜 필요한지, 용인문화원과 중복되는 연유와 추후 어떤 계획 하에 진행되는지 궁금해 하셨다. 물론 우리 조사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궁금했다. 이렇게 자료를 모으다 보면 뭔가 가닥이 잡히겠지. 유적과 유물 교통 등등을 확인하는 것이 일차 목표긴 하나 지금 중요한 건 이들의 이야기, 마을의 지금과 내일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그동안 일해 왔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서 인터뷰에 공을 들였다. 이십 년째 이장일을 보신다는 사례도 더러 있었다. 특히 그 마을에서 나서 자라 가정을 이루고 사신 분의 경우 본인의 생애 전체를 포함해 거의 백년의 마을역사 그 자체다. 물론 시간과 조사 범위 등등 제약과 한계를 감안하여 이야기가 시작될 즈음 벌써 거둬들여야 했지만 말이다.
코로나 탓에 문을 닫아놓은 마을회관도 여럿 있었고 모이는 어르신들 숫자도 부쩍 줄었다 한다. 조금 수선스럽게 일방적인 인사하고 처음 잠깐의 탐색전 허들만 넘으면 각각의 이야기는 제법 풍성했다. 어렸을 때 물 넘쳐 학교 못 간 이야기, 폭설 내리면 서둘러 먼저 하교했던 이야기 시집오기 전 인민군과 국군이 뒤바뀌는 통에 이중으로 고초를 겪었던 이야기, 자식을 키우느라 정신없이 세월 다 갔는데 이제 다시 손주를 돌보는 이야기. 흙길이 시멘트 길이 되고 골프장에 아파트에 이젠 대규모 반도체 공장 수용까지. 그 많은 이야기 끝에 꼭 한마디 덧붙이신다. “그런데 이런 얘기가 뭐 들을만해요? 마을 역사나 유적 그런 중요한 건 몰라요.”
경인천 저수지 서원 향교 삼일운동 등 과거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현재도 중요한데 어떤 걸 자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래된 가게를 찾았다. 세탁소 미장원 슈퍼마켓 문방구 방앗간 등. 낡은 간판에 오래돼 보이는 건물의 가게 안엔 오래 자리를 지키고 주변의 변화를 목도한 증인이 계신다. 길 너머 시금치 밭에 집이 들어서고 건물이 생기면서 길이 넓혀지고 네거리가 북적거렸다는 이야기. 이제는 별반 오가는 사람도 없어지고 경기가 예전 같진 않지만 여전히 가게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 결혼하면서부터 문을 열었는데 ‘그저 하루하루 살다 보니 오늘’이라 무심하게 말씀하신다. 오랜만에 옛날이야기를 하니 새삼스러워 그것도 좋고 수건 선물도 고맙다 하셨다.
이렇게 모인 보고서와 음성파일 동영상이 어떤 결과물로 정리될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어떻게 버무려서 새로운 출발이 될까도 기대된다. 조사에 응한 마을 분들도 한 번씩 생각나시면 물으실 것 같다. 그때 여름 한창 더울 때 와서는 이것저것 물어보고 가더니 어찌 되었나.
글_조미환
무더운 여름 기운만큼 뜨거웠던 용인시 처인구를 열심히 다니며 조사했습니다. 조사 기간이 바쁜 농번기였지만, 만나 뵙는 분들이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또 기후 이상 폭우로 인해 방문 여정이 변경되는 등 여러 장애가 있었지만, 함께 조사하게 된 팀원분과 각 조별로 배정된 처인구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마을 곳곳의 지형과 형태에 따른 읍, 면, 리의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읍사무소에서 현지 지도와 이장님들의 연락처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 조사는, 귀한 시간을 내주신 이장님들과 우연히 만나 뵈었던 마을 어르신들의 따뜻함과 마을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을 분들께서는 해당 조사로 많은 관심과 변화가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역사 문화 유적과 그 지역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과의 만남을 통해 용인의 옛이야기와 시대상을 알게 되었고, 마을을 사랑하는 뜨거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평일 낮에 방문한 농촌지역이라, 만나 뵐 수 있는 분들의 연령층이 대부분 어르신이라는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인구 외곽 지역들의 특징과 각 마을에 필요한 부분들 그리고 마을 공동체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인적, 물적, 지리적 조사로 그치지 않고 더 좋은, 더 나은, 더 함께함을 느낄 수 있는 조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처인구를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진으로 영상으로 글로 남겨진 처인구 농촌 조사에 관한 이야기가 데이터 정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로 남겨지기를 바라며, 마을공동체지원센터의 연락처를 홍보하였고, 그로 인해 저와 함께 사는 용인시 안의 처인구가 더욱 활성화되고 거주하는 분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게 된다면, 이번 조사의 결과가 유의미해질 것이라 생각하며 후기를 마칩니다.
글_하정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