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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띄우는 글] ‘마을 그늘과 그림자’

2021-08-02

8월_ ‘마을 그늘과 그림자’

그늘과 그림자(사진_ 연인선)

‘마을 그늘과 그림자’

해가 쨍쨍한 한낮에 넓은 나무그늘을 만났을 때의 느낌은? 그 자리에서는 같은 바람도 더 시원하고 뜬금없이 위로의 기쁨을 맛보기도 하지 않는지.

해 질 무렵 산책을 하다가 문득 자신의 긴 그림자를 만날 때의 느낌은? 이게 나야? 하면서 나의 존재를 새롭게 만나는 신선한 발견에 함께 걷는 동료를 얻은 듯 괜히 든든해지지 않는지. 그늘은 빛의 반대편을 상징해서 어둠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실은 강한 빛으로부터 보호하는 속성을 지닌다.

그림자는 각도나 빛의 강약에 따라 실체의 형태를 새롭게 드러내준다.

시각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음영(陰影)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빛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빛을 가장 잘 느끼게 할 수 있는 요소여서 그렇다.

그늘과 그림자가 곧 음영이다. 굳이 시각예술에서만 음영이 중요한 건 아니다. 소리로 치면 음의 울림이나 메아리, 음색 등이 그늘과 그림자 같은 요소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늘과 그림자가 없이는 조화를 얘기할 수도 없고, 실체를 실체답게 인식할 수도 없다. 이런 자연의 이치는 우리 삶에 어김없이 반영되어 우리 삶을 조화롭게 또는 풍요롭게 한다.

마을 만들기에서 얘기하는 마을이나 마을공동체는 정적이거나 동적인 물체가 아니어서 그늘이나 그림자로 그 상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덥고 코로나로 인해 막막한 시절에 마을의 그늘, 마을의 그림자를 떠올려보고 싶어지는 건 아마도 그 필요의 간절함 때문일지 모른다.

그늘이 터에 가깝다면 그림자는 무늬에 가까울 수 있다.

그래서 마을의 그늘이라 하면, 도로나 건물, 놀이터, 가게들, 학교, 병원 등 특정 역할을 상정할 수 있는 기존의 기반시설보다는 사람들 간의 교감과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말 그대로 생활영역으로서 마을사람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놀터, 배움터, 텃밭, 일터, 장터 등, 마을에 펼쳐진 제2의 삶의 완충지대를 일컬을 수 있다. 이런 느긋하고 너그러운 터들이야말로 그야말로 더는 버티기 힘들 정도로 땡볕같이 경쟁과 소비로 치닫는 시대에 새로운 에너지의 공급원인 그늘이 될 수 있다.

그럼, 마을의 그림자는 어떤 모습으로 떠올릴 수 있을까? 그림자는 실제의 형태가 반영되므로 그늘보다 구체적이나 이 역시 얼핏 감이 잡히지는 않는다. 혹 마을사람들이 움직여 만들어지는 활동의 무늬가 그림자이지 않을까.

가령, 마을에서 서로 돌봄이 이루어질 경우에 그 돌봄의 네트워크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오가는 부지런한 동선에서 빚어지는 볼륨 있는 아름다운 무늬, 함께 짓는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로 함께 밥상을 차려 나누는 자연 순환적 삶의 무늬, 함께 모여 웃고 떠들며 만들어내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그려내는 상상의 무늬, 한 사람의 재능으로부터 여럿의 배움으로 이어지는 고리의 무늬 등등. 물론 보기 좋고 아름다운 무늬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사는 마을에 편안한 그늘이 있고, 아기자기한 삶의 무늬가 다양하다면 나의 삶도 그만큼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이는 나 스스로 함께 그늘의 자리를 넓혀가고, 무늬 짓기에 동참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넓힌 보폭과 내가 내민 팔만큼 넓어진 그늘 안에서 함께 쉴 수 있는 벗을 만나고, 미처 몰랐던 내 존재의 그림자를 새로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을이, 마을공동체의 움직임이 없이는 마을의 그늘도, 마을의 그림자도 있을 수 없다. 또한, 마을의 실재와 역동적인 공동체의 색채와 활력, 그 멋과 맛이 그늘과 그림자의 멋과 맛에 비할 바 아님은 말할 나위 없다.

글/ 사진_ 연인선(용인시 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