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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띄우는 글] ‘거저’

2021-08-25

9월_ ‘거저’

▲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용’_ (사진/연인선)

‘거저’

거저를 좋아하는 우리들. 대체로 거저 얻는 것, 거저 생기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말로 공짜를 좋아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거저 받는 것이 정말 많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의 생명조차 거저 받았고, 자연이 주는 것은 다 거저 누리는 것이다. 공기와 물뿐만 아니라 들꽃과 열매들도.

어느 날 용인 처인구에 있는 한 식당에 갔는데 입구에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용’이란 애교스런 문구 아래 갓 딴 토마토 몇 봉지가 바구니 안에 놓여있었다. 살짝 발동하는 욕심보다 그 좋은 인심에 대한 반가움과 고마움의 미소가 먼저 떠올랐다. 식사 후 나올 때 바구니는 이미 비어 있었으나 토마토를 거저 얻지 못한 아쉬움보다 거저 나누는 인심에 대한 흐뭇함이 더 오래 남았다. 누군가는 좋아라 번진 함빡 웃음과 함께 거저 얻은 수확물 자랑을 싱싱하게 나누며 또 다른 누군가와 맛난 토마토를 먹었을 것이다. 부끄런 토마토는 그 사연 따라 조금이라도 더 빨갛게 익어 맛을 더하지 않았을까. 아마 싸게라도 돈을 주고 그 토마토를 사고팔았다면 미소도 고마움도 흐뭇함도 즐거움도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거저에서 파생되는 동심원 같은 효과가 그토록 겹겹이다.

그런데 ‘세상에 거저는 없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무엇이든 상대적인 대가가 있는 법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다른 각도에서 보면 내게 거저인 것은 누군가의 지불, 호의, 봉사 또는 희생이 있어서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해서 결국은 다 돌고 돈다는 세상 이치로 귀결될 수 있다. 어차피 돌고 도는 거면 더 적극적으로 서로 거저 주고받는 게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 아닐까. 그로 인해 생기는 좋은 기운과 행복의 동심원이 그만큼 더 넓게 퍼져나갈 수 있을 테니.

내가 거저 받은 것, 받는 것들과 그 감흥을 한번 떠올려보자. 그리고 내가 거저 준 것, 주는 것들과 줄 때 얻어지는 마음의 가벼움을 떠올려보자. 내가 거저 줄 수 있는 행복이 거저 받는 행복보다 크고, 거저 줄 수 있는 것이 거저 받을 수 있는 것보다 많지 않은지.

어느덧 풍족해진 우리 삶에서 잉여의 짐, 잉여의 부채를 걷어내는 지름길은 거저 주는 길이다. 어떤 책에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뚱뚱한 동물은 있어도 뚱뚱한 식물은 없다는. 식물은 필요 이상의 양분이나 수분, 심지어는 햇빛을 흡수하면 아예 죽어버린다는 거다. 그런가 하면 동물은 살기 위해 다른 걸 잡아먹고, 먹을 걸 찾아 헤매야 하지만, 식물은 가만히 한 자리에서 성장의 양분을 거저 얻고, 또 그렇게 거저 씨앗을 남기고 뿌린다. 나무에서처럼 식물로부터 배울 게 훨씬 더 많은 게 아닌가 싶다.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 시장경제, 즉 교환경제에 대비되는 선물 경제(gift economy)의 기본이다. 선물을 주고받으며 생기는 기쁨의 경제, 호의의 경제, 서로 좋은 호혜적 나눔이다. 물질만이 아니라 재능도, 시간도 선물할 수 있다. 마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작은 행복과 가벼워지는 삶의 시작이다.

글/사진_ 연인선(용인시 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