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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의 마을문화 만들기 '다들'

세대 갈등을 넘어 마을에서 함께 살기

2022-05-10

용인시민신문-용인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 공동기획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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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야기에 앞서서 고백할 것이 있다. 사실 나는 세대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개개인이 가진 특수성을 세대라는 한 단어로 묶어 버리기에 일반화의 오류와 폭력성이 동원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번 생성된 세대론은 쉽게 폐기되지 않고 세대의 명칭을 견고하게 한다. 대표적으로 10년을 주기로 이름을 바꿔가는 (5)86세대, 현재 청년세대를 아우르는 MZ세대라는 세대론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세대론은 개인의 개별성을 존중하지 않으며, 단순히 태어난 시기가 비슷한 개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분류한다. 심지어 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세대론에 맡긴 채 더 이상 사고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함께 살아가는 것은 대화와 타협의 과정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경제학자인 우석훈은 88만원 세대라는 새로운 세대론을 내놓았다. 당시 1988년생 청년이 받을 수 있는 최저임금이 88만원이라는 점에서 기인한 새로운 세대론 단어였다. 책은 10만부 이상 팔렸고, 88만원 세대는 한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88만원 세대는 저자 요청으로 폐기된다. ‘책을 통해 세상을 바꾸길 원했지만, 오히려 88만원 세대라는 세대론에 청년들이 안주하려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세대론이라는 것이 상당히 정치적이고, 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세대론에 맡긴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예시일 것이다.

현재의 세대론은 단순히 ‘세대’가 아닌 ‘젠더’ 갈등까지 더한다. 최근에 등장한 이대남, 이대녀라는 대립구조의 새로운 세대론은 실제 존재하는 갈등보다 현저히 갈등을 부각시킨다. 일부 집단은 스스로 정체성을 학습하기에 이른다. 정체성을 학습한 가상의 세대는 더 이상 소통은 없고, 상대를 알려는 노력 없이 한 집단을 외면하고 무시한다. 갈등을 부추기기 위해 이익집단은 세대론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세대론 대신 ‘꼰대론’을 말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세대론, 세대 갈등에 대한 단어에 거부감을 느낀다. 세대가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그저 태어난 연도의 차이가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갈등이 있다면 세대가 아니라 한 개인과 갈등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에서 우리는 서로 나이가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은 제각각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말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생각이 깊은 사람, 그리고 안타깝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세대 차이라는 말보다 꼰대라는 말을 쓰고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갈등이 언제 심화되나 생각해보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거부한 순간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말이 옳으며, 남의 의견을 묵살하는 일이 반복되는 경우 꼰대가 등장한다.

꼰대라는 말은 세대론과 별개로 존재한다. 꼰대는 생물학적 나이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나이에 기반한다. 50대 꼰대가 있을 수 있지만, 20대 파릇파릇한 꼰대가 있을 수도 있다. 꼰대에게 자신의 주장은 누구나 지켜야 하는 ‘명령’이며, 꼰대와 주위 사람의 관계는 수직적이다. 꼰대는 평등한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마을에서 함께 산다

우리에게는 모두 자신의 뜻이 이뤄지길 원하는 욕구가 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뜻을 관철하면서 살 수 없다. 그럴 수도 없고, 그렇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감은 대화와 타협의 과정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누군가 ‘꼰대’의 기질을 보이더라도 대화하고 설득해 함께 나아가기를 바란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서로 돕고 나누는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집단을 세대론으로 몰아내지 말고, 꼰대라 불리는 사람들 또한 아우를 수 있는 역량이 공동체 안에 있으면 한다.

청년이 본 우리 사회는 씁쓸하지만, 한 집단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품어내기보다 서로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바쁜 세상에서 나와 남을 구분하는 일은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이제 쉬운 방법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을에서부터 이 어려운 일이 시작되었으면 한다. 좋든 싫든 우리는 마을에서 함께 살아간다.

강현석(공동체지원활동가)

기사보기: https://www.yongin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72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