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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두 번째 Zoom 마을 Zoom in 용인

2021-06-21

용인시 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마련한 온라인 화상 비대면 대화의 장

2021년 6월 Zoom 마을 Zoom in 용인 : 마을 미디어, 마을 기록, 마을이야기

두 번째 만남 내용입니다.

일시: 2021년 6월 16일 수요일 2시 ~ 3시 30분

참석자: 총 11명

연인선(용인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

최진선(느티나무도서관)

강유진(성미산 마을잡지)

김경현(느티나무도서관 예비사서)

유승주(신갈오거리 마을지)

장은영(지구별시민)

오유경(머내여지도)

김태희(동천마을네트워크)

윤지민(느티나무도서관 예비사서)

박예진(느티나무도서관 예비사서)

김은혜(용인시 공동체지원활동가)

<소개>

유승주) 저는 신갈오거리 마을지 ‘갈래’를 만드는 데 참여했습니다.

김경현) 느티나무도서관 예비사서로 활동 중입니다.

강유진) 전공은 문헌정보학과이고 성미산학교에서 마을잡지를 만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 나눔>

연) 저번 시간에 나누었던 이야기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마을 미디어, 아카이빙이라는 거창한 이야기보다는 마을에서는 소소하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하고, 그래야 사람을 모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기록의 의미에 대해서 한분 한분 소중한 이야기를 남겨주셔서 고마웠습니다.

– 서로에 대한 일깨움, 자기 자신의 잠재성에 대한 일깨움, 욕구에 대한 일깨움, 사회문제 에 대한 관심의 일깨움 이런 것들이 모두 마을기록을 통해 가능하겠다.

– 여럿이 함께하면서 응집력과 확정성도 생긴다.

– 여럿이 함께 해서 공동체성이 향상되는데, 공통의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 함으로써 공동의 기억이 만들어진다.

– 미디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타자를 보는 것이 익숙한데, 마을 미디어의 특징은 스스 로 주인공으로 등장해 주체성과 정주성이 생기면서 공동체성이 더 단단해질 수 있다.

– 마을 미디어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 매체가 다양하니 기술을 배우는 교육과정이 있으면 좋겠다.

– 결국 정책적으로 지원이 되어야 지속가능하겠다.

– 마을 미디어는 지속적인 소통과 교류 공감의 장이다.

이 정도로 지난주 이야기 정리하고요. 오늘은 사례 이야기도 듣고, 무엇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남길지에 관해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준비하면서 찾아보니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에서 2013년도에 마을공동체 기록관리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마을공동체 기록관리 매뉴얼은 저희 센터 홈페이지 공유했으니 필요하시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매뉴얼 서문 내용 중 인상적인 말이 있어 읽어보겠습니다.

‘“마을공동체에서는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중요한데, 관계를 맺는다고 함은 함께한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기억의 공유는 설명을 건너뛰게 한다.”

이걸 읽고 생각해보니 타향살이가 힘든 이유 중 하나가 함께한 기억의 공유가 없어서 일일이 설명을 해야 이해가 가능하니 피곤하고 힘든 것 같습니다. 마을에서도 함께 공유하는 게 없으면 마찬가지겠지요.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록을 통해 기억이 재구성되어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좌우하는 거라 기록은 더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면서 무엇을 어떻게 남길까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최) 사이다 웹사이트: http://www.saida-books.com/

사이다는 2010년에 창간했고, 기억에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부분은 지속성에 관한 것입니다. 발간비용은 2,000만 원 정도인데, 비용은 사회적기업인 주식회사 더 페이퍼라는 회사가 사회에 환원하는 식으로 해서 충당한다고 합니다.

글쓰기는 ‘사이다 클럽’이라는 회원 클럽이 있어서, 한 달에 5,000원씩 내면 잡지도 받아보고, 계절별로 잡지가 출판되는데, 출판되면 파티도 하고, 교육이나 전시, 작가들을 만나는 자리에도 초대되는 등의 혜택을 준다고 합니다. 현재 사이다 클럽 회원은 60명 이상이라고 들었고, 그분들이 글과 사진 등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구글에 지역 잡지 사이다라고 검색하시면 어느 정도 보실 수도 있고 느티나무도서관에도 네 권 정도 있습니다.

제목이 ‘사이다’이지만 부제는 ‘골목 잡지 사이다’입니다. 수원 팔달구 행궁동의 특징이 행궁이 있으면서 아파트 개발이 전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잖아요. 실제로 골목이 많고 그런 골목들을 다 기록하고, 골목길의 오래된 상점들, 그 지역에서 오래 특정한 일을 해 오신 분들에 대한 인터뷰 이런 게 많더라고요. 이런 마을 중심의 이야기를 동을 중심으로 싣고 있습니다.

연) 저는 저번 시간에 이야기했던 디어 교하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교하는 고양 신도시로 완전히 개발되지 않고 옛날 정서 같은 것이 남아있는 동네여서 사람들이 좀 더 친근하게 모일 수 있었고 거기에 교하 도서관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변에 출판단지도 있고, 대안 대학 비슷한 ‘파티’라는 디자인 전문학교도 있다 보니 교류하면서 여러 가지가 이루어지고 2016년에 지원을 받아 준비하면서 되었는데. 일 년에 3번씩 발간하다가 2020년 이후에는 코로나로 정기적인 발간을 못 했다고 합니다.

내용을 보면 우리 동네 아는 사람, 공간소개, 교하 산책 지도도 만들고, 실린 사람들 반응도 싣고, 읽은 사람들 반응도 싣는 부분이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6명의 편집단이 재미있게 열심히 일하고 있으셔서 지속해서 만드는 게 가능한 것 같고 동네 사람들, 동네 이야기를 싣다 보니 주민자치위원회에서도 도움을 많이 주었다고 합니다.

판형이나 사진도 높은 수준입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마을을 기록한다고 하는 분들의 후기인데요.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편집위원 다섯 분이 남긴 글이 있는데 굉장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으니 나중에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까 이야기해 드린 서울시 마을공동체 기록관리 매뉴얼은 정말 매뉴얼처럼 책이 만들어졌고요. 뒤쪽을 보면 서울에 다섯 지역을 사례로 제시를 했는데 양천 목3동은 구술 기록한 내용, 은평구는 축제 기록, 노원구는 사진기록, 성미산은 학교기록, 도봉 정릉은 마을 이야기 기록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마을잡지, 마을신문을 다채롭게 만들 수 있겠지만 특히 잡지 같은 경우는 대상을 구체화하는 것이 훨씬 더 만들기도 좋고 특색있는 마을잡지가 되지 않을까 해서 소개해드립니다.

최) 서울시 마을공동체 기록관리 매뉴얼은 저도 이전에 봤던 건데 이것도 사실은 논란이 되게 많습니다. 완벽한 완성된 상태라고 할 수 없는데다 매뉴얼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만든 거라서 사실은 공공 관리 매뉴얼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온 상태이고, 실제 마을에서 활용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공동체 아카이브나 마을기록에 대한 것은 자율적으로 그들이 편한 대로 하는 것이 제일 낫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가고 있습니다. 경기도에서도 매뉴얼을 만들어야 해서 만들다보니 유일하게 있는 자료가 이거라서 이걸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연) 제가 보기에도 공공기관에 있는 자료를 모으다 보니 아카이브 위주라서 실질적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강유진님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강) 성미산마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하는데 좀 알고 계시나요? 마을공동체로 성미산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니 들어보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짧게 마을 소개를 하자면, 공동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성미산이 배수지 공사로 파괴될 위기가 있었는데 그때 주민들이 힘을 합쳐서 막아내면서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주축이 되고 있는 게 성미산학교인데 초중고 12년제로 장애인, 비장애인 통합해서 운영하는 대안학교입니다. 일반 학교와 다르게 프로젝트 수업을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마을의 다른 곳들도 간략히 소개하자면, 되살림 가게에서는 마을 화폐를 이용해 안 쓰는 물건들을 팔고 또 사고 하는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고, 두레생협은 좋은 먹거리에 대해서 고민을 하면서 생겼습니다. 또 성미산 마을 밥상이 있는데 최근 2, 3년간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좀 많이 있었어요. 마을이 유명해지다 보니까 오히려 땅값, 집값이랑 이런 게 올라서 재정문제로 마을에 중요했던 밥상이나 작은 나무라는 마을 카페가 문을 닫게 되는 그런 안타까운 일들도 아직도 진행 중이고 그런 문제에 많이 부딪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 카페가 마을회관 1층으로 이사를 오게 됐고 2층은 청년들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으로 이것저것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마을 공동주택이 지금 한 3, 4개 정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주택 문제를 같이 해결해보고자, 그 집을 구성하는 단계부터 원하는 집을 함께 짓고, 공유공간을 건물 안에서 공유하는 개념의 공동주택입니다.

또 최근에는 성미산학교가 장애 비장애 통합이다 보니까 졸업생분들 중에도 장애 학생들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졸업 이후에 어떻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 학부모님들이랑 사부작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여기서 일을 해보기도 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을 찾는 그런 흐름도 있었고 마지막으로는 마을 극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연극, 발표회나 동아리 등 문화예술을 펼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많이 경험했던 것들 위주로 소개를 드린 거고 사실 마을이라고 해도 너무 광범위하고 한눈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성미산마을이냐는 경계는 없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이걸 바탕으로 정리를 해봤을 때 저도 사실 성미산학교에 다닐 때는 마을에 대해 잘 모르다가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알게 됐는데 저희동네에 관해 외부에서 취재하거나 신문 기사가 나온 것들은 많이 있었으나 저희가 직접 이야기를 써서 이렇게 정리해본 적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마을잡지를 기획했었고, 이후에 마을의 역사를 담임선생님이랑 저랑 몇 명의 졸업생들이 같이 준비해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마을회관에 붙였어요.

이렇게 마을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서 7가지 키워드를 뽑아봤습니다. 교육, 성미산 지키기, 생태, 경제, 문화, 공동주택, 단체들입니다. 이후의 바람들 이런 것들을 적어서 이것도 일종의 아카이빙이라고 생각하긴 했거든요.

연) 마을사람들도 함께 보지만 성미산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으니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도 이렇게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참 좋겠네요.

강) 그리고 저희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거는 마을에 사는 초1부터 고3까지를 졸업한 학생 2명의 연대기를 적어본 거예요.

공동 육아부터 시작한 그 친구들의 연대기를 ‘우리는 마을에서 그렇게 청년이 되었다.’ 하면서 이렇게 실었습니다. 제 친구들이고 아직 그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2015년은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기라 잘 기억이 나는데 확실히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뭔가 많이 없어지는 걸 봤어요.

마을에서 유명하다고 해서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그것들이 하나둘씩 없어지는 것들이 이상하더라고요. 이게 뭐지? 싶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나무카페가 없어질 때 사회적으로 알리기 위해 큰 노력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남습니다. 현재 성미산마을에서는 일자리, 학생들 졸업 이후의 문제, 경제적 부분이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마을을 소개하고 마을잡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6명 정도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서 마을 소식지를 만들어 메일로 소식을 보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물은 없습니다.

그리고 실물로 있는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졸업프로젝트로 에너지에 대한 관심사로 인터뷰하고 돌아다니며 마을잡지를 만들었습니다. 에너지에 대한 관심사와 문제를 마을에서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고 돌아다니면서 마을 소식을 담다 보니 항상 주제가 있었습니다.

공동주택 이야기를 아까 말씀드렸는데, 공동주택에 같이 살면서 절약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담았고, 텃밭, 태양광발전기 보급과정과 주민들의 반응 등을 담았습니다.

중학교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었고, 마을에서 전환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밀양 송전탑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연대해서 더 에너지 주제가 크게 와 닿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에너지라는 주제로 하게 되었습니다.

연) 혼자 만들었나요? 아니면 여럿이 만드신 거에요?

강) 반 친구 10명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이 잡지가 그 뒤로 3년 동안 만들어졌습니다.

에너지 다음 주제는 인권이었고 그 다음 주제는 마을에서 좋은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를 한 것이었습니다. 이게 마을잡지라고 해서. 내용이 꼭 마을에 한정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주제에 맞게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찾아다니면서 만들었습니다.

그 후로 제가 고 3때 마을잡지를 하나 해보고 싶었는데 프로젝트로 다 같이 할 수 있는 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해서 만든 게 이 성미산 마을 잡지입니다.

제가 그 당시 세월호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아 기억 저장소라고 안산에 있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기록물을 정리하는 과정에 전부 참여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마을과 세월호를 어떻게 연결시킬까 하다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는 코너에서 마을에서 기억 모임을 열고 피케팅을 매일 하시고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시던 분들을 찾아가 인터뷰해서 정리하고, 다른 친구의 주제는 농사였는데 자기가 농사에 대해서 배운 것도 있고 마을에서 농부로 도시 텃밭을 하고 계신 분들이 있으니까 그분들을 찾아서 인터뷰하고, 또 축제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축제의 역사 같은 것을 배운 다음에 여기 와서 마을 축제에 대해서 기획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마을에서 매일 피케팅을 하시던 어른들 세 분을 인터뷰했는데 이 작업이 저한테 굉장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실 학부모님이시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별로 대화를 할 일이 없잖아요. 그냥 누구 어머니 이렇게 뵙다가 이런 일을 하면서 이분의 생각이나 경험을 들을 수가 있었던 점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마을잡지를 만들면서 마을 사람들이랑 이야기 거리가 생기고 다르게 만나보는 경험을 다른 친구들도 모두 가장 좋았던 점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원래 애초에 잡지를 기획할 때는 계간지였습니다. 그런데 1년에 한 번 밖에 못 만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편집장으로 있어서 제 책임도 있는데, 제가 이걸 만들고 졸업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제 더 이상 만들 사람이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관심 있는 사람 모이라고 해서 한 8명인가 그 정도 모이긴 했어요. 제가 시간 핑계를 대자면 시간이 없어 신경을 많이 못쓰다 보니, 그 주체가 없어진 느낌, 그러다 보니 잡지의 두께도 많이 얇아지더라고요. 첫 호에는 시간이 많고 전념으로 할 수가 있으니까 저희가 마을에서 없어지는 것들도 취재도 하고 어른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후로는 주로 학생들의 이야기만 주로 담게 되어서 사실 그게 한계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부터는 아예 제가 빠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격이 확 바뀌어 마을의 잡지 성격이 아니라 본인들의 문집이 만들어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 친구들은 이 친구들대로 어떤 개성을 담았지만, 누군가 봤을 때 아무도 이 매체의 연속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문제겠지요.

그래서 이 매체가 실패한 원인을 세 가지로 정리를 해봤습니다. 첫 번째는 학교의 특성상 해가 바뀌고 담당했던 학생이 졸업을 하면 그걸 맡을 사람이 없어진다는 거, 그래서 매체에서는 지속성이 엄청 중요한데 그게 없어졌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잡지는 시기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이야기가 중요한 시기에 그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데, 욕심을 부리다 보니 내용은 늘어나고 시기를 놓치게 되다 보니 일 년에 한 권밖에 안 나오게 되었던 것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은 높아질 수 있지만, 목적 달성은 못 했다고 할 수 있지요.

마지막으로 마을 구성원들이 많이 참여를 해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학생들 중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희가 마을 사람들한테 글을 부탁하거나 인터뷰를 부탁하는 연결고리는 만들었는데 적극적으로 먼저 써주실 만한 분들은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만 그런 게 아쉬웠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잡지에 자기 이름이 나오거나 본인이 써야지 잡지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가고 마을에서도 인지도가 생기는데, 점점 갈수록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다 내용을 채우려고 하는 문제 때문에 관심을 많이 못 받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추가로 마지막 문제로는 예산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잡지 발간비용은 성미산 학교 안 매점 운영을 위한 협동조합에서 나오는 예산과 100만원 정도의 학교 지원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일자리가 되어야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누군가가 그냥 계속 취미로 하기에는 저처럼 금방 나가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정적으로 잘 되고 커진다면 출판 사업처럼 마을에서 일자리가 하나 생겨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여기까지는 못 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편집에 드는 노력을 최소화했어야 했는데 저희가 그런 부분을 장기적으로 생각을 못 한 바람에 안정적으로 계속 글을 실을 수 있는 툴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결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끼리의 사업이 아니라 확장이 되어야 하고, 일은 최대한 줄이고 관심은 많이 가지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제 이야기입니다.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 100만원의 지원이 출판까지 다 나오는데 나오는 비용인가요?

강) 네. 그런데 첫 번째와 그 후의 잡지는 비용이 달랐습니다. 첫 번째는 내용 및 교정까지는 우리가 했지만, 디자인과 인쇄는 외부에서 해서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었습니다.

연) 그간의 과정이야기를 쭉 들으면서 생각하게 된 것들이 참 많아요. 강유진님 계획은 앞으로 어떻게 되세요?

강) 우선, 제가 문헌정보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도서관 동아리를 했던 거랑 고3 때 초대 강연 듣는 기획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박영숙 관장님을 초대했었거든요. 그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은) 강유진님은 지금까지 이렇게 여러 가지 기록의 경험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진짜 아키비스트 같습니다. 아까 예산을 협동조합이나 학교 예산을 받았다고 했는데 어느 부분에 지출이 가장 컸나요?

강) 글을 쓴다거나 글을 요청할 때 원고료를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출판 자체 디자인, 인쇄비가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김은) 학교 학창 시절부터 기록에 참여하면서 실패도 맛보고 성공도 맛보고 문헌정보학과를 전공하면서 한 방향의 길로 쭉 걸어가고 있으신데요. 그 동기나 마을을 향한 관심이나 이런 것들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강) 문헌정보학과 계기는 마을잡지를 만든 것과 세월호 단원고 기억교실 이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었을 때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가족분들 인터뷰하고, 그 기억 교실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어서 그런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문헌정보학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장) 지역에 학생들이 있잖아요.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중고등학생들에게 어떤 방법을 써야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청소년이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되는 길은 무엇이 있을까요?

강) 어려운 질문이긴 한데요. 저는 성미산학교 다닐 때 마을 학교에 다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사실 마을에 살면서 학교에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을을 많이 체감하지는 못했는데, 대신 같이 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재미는 있었습니다.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해서 성과가 있고 즐거움이 있고, 그 경험이 쌓이고 그것이 커지면 마을이 되는 것이고 어른들도 같이 하다 보면 확장이 되겠지요.

하고 싶은 것을 혼자서는 못해서 친구들이랑 같이하면 된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확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연) 어려운 질문인데 명쾌한 답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어른들도 재미가 없으면 하지 않습니다.

줌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 한 적 있는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다 보니 학생들이 활동하기 어려운 점이 있긴 합니다.

최) 들으면서 드는 제 생각은 세월호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잡지를 남기고 하는 것을 보니, 사실 동천동 지역에서도 그런 활동이 있었는데, 사진 자료를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은 있을지는 몰라도 마을에 관한 것을 공유하는 것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잡지가 있으면 이런 면에서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뭔가가 생기겠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네요.

강) 추가로 이야기를 드리자면 뭔가 또 새로운 일이 생긴다고 느끼긴 했습니다. 세월호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었고, 마을 분들 활동을 매체에 담기 위해 만나고 그러다 보니 다른 일들을 더 제안받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인터뷰 형식으로 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걸 통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또 그것이 더 확장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생기고, 또 그게 더 잘되면 그걸 마을에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몇몇이 고립되어 편집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보다 현장을 찾아가면 저도 재미있고 과정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 젊은 열정이 매우 부럽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강) 저희도 내부적인 문제는 많습니다.^^

연) 우리의 삶이 개인화되고 파편화되어있는데, 마을기록을 통해서 모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지요. 주체가 어른들 중심으로만 되는 것보다 청소년, 청년,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것이 역시 좋고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들이 자기 자신의 재능을 펼치는 기회와 사회와 이웃에 관한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둘 다 이런 작업을 통해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까 실패 원인을 분석하셨는데, 주체를 유지하는 것과 주체를 세우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사실 일거리와 연결되어 경제적인 면이 어느 정도는 해결이 되어야 지속 가능하겠다 싶어 고민이 됩니다.

시기에 관련된 이야기는 주체 역량에 따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도와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비용도 조금 전 이야기와 맞물리는 것 같습니다. 마을 기금이 필요할 수도 있겠고, 외부 기부나 잡지나 신문에 실리는 사람들에게 받는 약간의 기부 등을 활성화하는 것도 예산 문제와 맞물리겠죠.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참여할 것 같고요. 안 그러고 싶지만, 돈과 다 연결되네요.^^

강) 저희는 마을잡지 비용 후원을 받았고, 후원자에게는 잡지를 보내주었습니다. 만 원의 비용을 미리 내면 잡지가 만원의 가치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마을 어른분들이 교육적인 차원에서 돈을 지원해 주신면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게 지속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연) 오유경님은 동천동에서 책자를 만들고 리플렛 등도 만드시면서, 마을 조사하면서 생긴 욕심도 있으실 거 같은데 어떠세요?

오) 사실 저는 강유진님께서 실패라고 하셨지만, 굉장한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쉽지 않은 과정에서 몇 개라도 잡지가 나왔다는 거 자체가 성공일 거 같고요. 그 과정에서 개인이 얻어가는 부분이 아주 컸을 거고 마을에서도 너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마을에서 더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신 분들은 더 없었나요? 마을의 반응은 어땠나요?

강) 사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우리가 다 했다는 느낌에 충만해있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실 선생님들 및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모두 한 것처럼 보이지만 학교의 공간 안이라 가능했다고 생각하고요. 잡지 발간했을 때 저희도 뿌듯했고 교장 선생님도 기대를 많이 하셨습니다. 모든 공동체는 이야기 공동체니까, 공통의 이야기가 없으면 마을도 없으니 잘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기대를 많이 받기는 했습니다.

저희가 전환이 주제라고 했잖아요. 전환에 관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소소한 모임들에 부탁을 많이 해서 하는 활동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좀 했었습니다. 그래서 학부모님들이 이제 농사 공부를 하신다든가, 에너지 줄이는 그런 모임들을 새롭게 알 수 있었던 지점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기대는 많이 받았습니다.^^

연) 여기 모이신 분들은 마을기록, 마을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공통적인 어려움도 있고, 마을마다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공동체마다 하고 싶은 내용도 좀 다를 것입니다.

한 가지 제안을 드리자면,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마을의 기록이나 잡지는 어떤 특색을 가졌으면 좋겠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가상의 계획을 세워보면 어떨까요?

사람들 모으기, 비용마련 등의 구상을 한번 해서 그것을 공유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사례와 우리가 직접 하는 것은 다르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해보는 것이니 한번 그런 구체적인 구상을 해서 다음 주에 공유해보면 어떨까 싶은데 어떠신가요?

저도 마을에서 하고 싶은 것을 구상하고 싶고, 중간지원조직이나 행정에서 지원하고 싶은 것 등도 구상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떠세요?

오) 사실 비용이 있으면 지속해서 할 수 있는 에너지도 나오지만, 또 금전적인 것만으로도 안 됩니다. 정말 우리가 원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또 그런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게 중요한 일인 것 같긴 합니다.

연) 그 구상까지 한번 해보는 거죠. 사람을 모으고 싶다 아니면 모아보도록 한번 해보면 어떨까 이런 구상이요. 최진선님. 굉장히 난감하게 듣고 계시는데, 어떠세요? ^^

최) 도서관에서는 공간이나 편집 같은 것을 제공할 수 있겠지요. 필요한 미디어나 아카이브, 인터뷰 연결의 역할 같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한번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최) 어렵네요 ^^

연) 한 번 이렇게 뭔가를 만들어낸 경험을 가진 분들은 지속하고 싶어 하는 그런 욕심이 사실에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앞으로의 구상을 조금 더 구체화 시켜서, 실제 실험을 못하더라도 괜찮아요. 가능하다는 전제로 해보는 것이죠.

유) 갈래 이야기를 좀 해보면, 저희는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잡지를 내서 외부 업체에서 와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회의 주관을 하고 자료라든지 정보라든지 사진이라든지 이런 것을 이제 이렇게 같이 논의하고. 그쪽에서 이렇게 정리를 다 하고 편집을 하고 책자까지 출간이 되었고 우리는 받아만 보았죠. 도시 재생할 때 위원님들이 대부분 신갈오거리 원주민분들인데, 지역에 대한 애정이 정말 많으십니다. 그러다 보니 회의라기보다 추억여행을 주로 많이 하십니다. 50~60대 남자분이 주로 많으시다 보니 예전 이야기를 주로 많이 하셨고, 그러다 보니 그 회의가 매주 두 시간씩 세 시간씩 해도 되게 길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사담이 많아지게 되어 자발적인 잡지 기획은 잘되지 않았습니다.

성미산 마을잡지와 비교해보니 우리는 참 편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래는 정해진 예산이 있고 지원금으로 했기 때문에 약간 관보처럼 생각되어 혹시 버려질까 싶어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갈래 만들 때는 글을 아무도 응모하지 않았습니다. 원고료도 상품권 지급도 있었지만, 원고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 애먹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정말 간절하게 지역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해야만 진솔한 책이 나오는 것 같아요. 예산에 대해서는 사업적으로 지원해서 하다 보면 방법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연) 갈래는 지원이 많다 보니 오히려 지원이 많은 것도 문제가 있을 수 있겠네요.

아까 제안해 드렸던 것에 동의하시나요?

공허하게 이야기만 하거나 잘 해보자고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천해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천천히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어 제안을 한 것입니다.

우리끼리만 하기엔 버거울 때 네트워크가 생겨나잖아요. 다른 곳에서 하는 것에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공유되고, 연결되어서 우리만의 잡지가 계속 나오지 않더라도 다른 틀에서 주제 중심으로, 지역의 범위가 넓은 무엇이 나올 수도 있으니 구체적인 구상을 한번 해보시면,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 이야기하다 보면 방법이나 조언이 함께 나올 수 있을 거 같아요. 다른 제안 있으시면 해주세요.

강) 예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 이야기 했을 때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걱정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 그래서 지금 내가 관심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이디어를 모았거든요. 그래서 그것들을 어떻게든 마을과 연결시켰었습니다. 내가 지금 뭐에 관심이 있고. 이거 내 주변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내가 취재하거나 같이 이 기회를 통해서 사람들이 연결이 되면 재밌겠다 싶은 것들을 글로 쓰기 시작하니까 실제로 좀 시너지가 났었습니다.

그리고 만들면서 약간 경계했던 부분인데 이분들이 마을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을 한다고 해야 할까요? 경계가 없다고 하지만 같이 했던 활동이나 경험 공감대가 없으신 분들을 은연중에 마을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면이 있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마을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지기를 원했었습니다.

어쨌든 자기 관심사에서부터 시작을 하는 게 재미있게 우리 거를 만들어 나갈 원동력이 되는 거 같구요. 마을을 기반으로 삼아야겠지만 마을을 특정 짓거나 그러지는 않아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 그렇지요. 고민을 많이 하신 분답게 중요한 부분을 짚어주셨네요. 결국 우리 모두 내가 필요한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힘이 있을 텐데, 마을미디어라면 마을이 필요로 하는 것, 마을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겠지요.

우리 마을 이야기만 꼭 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있는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자극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주로 지면으로 만들어지는 잡지 이야기를 했는데, 다음 주에 아까 제안 드린 구상을 이야기 하고 나서 다른 매체를 연결해서 활용할 수도 있으니 덧붙여서 여러 매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럼 마무리로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김은) 오늘 풍성한 사례를 들으며 주제의 확장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모금, 후원에 관심이 많은데, 진심으로 취재를 하는 한 사람의 학생 그리고 인터뷰가 마을지의 후원금까지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걸 보면서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최) 저는 사이다에 대해 알아보면서 사이다클럽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방식도 좋을 거 같고 도서관이 이벤트를 만들기에는 굉장히 좋은 공간이니까 그렇게 활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강유진님이 굉장히 말씀을 잘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유) 오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들어왔는데 이 잡지와 또 이것들에 대한 진심이 담긴 얘기를 많이 들어서 다시 한 번 더 깊은 고민을 좀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오) 강유진님의 이야기가 아주 감명 깊었고,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겠다 라고 생각이 들면서 방법적인 면에서도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겠다, 예를 들어 탐방 수원이라고 독립출판에서 하는 간단한, 그냥 종이 출력한 것 같은 작품인데 개인적인 소소한 것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 이런 것들을 기록한 건데 그런 것들이 요즘은 어떻게 보면 독립 출판이 한 트렌드잖아요. 너무 거창하지 않아도 소소한 것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태) 즐겁게 일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원이든, 형식이든 현실적인 여러 상황에 앞서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짠~하고 누군가 그런 분이 나타났으면 하는 비겁한 소망이 스멀스멀 합니다^^

장) 강유진님 이야기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끝까지 해나가는 것이 감명 깊었고 그런 분이 제 주변에 한분 있으면 정말 힘이 될 거 같네요^^

강유) 너무 응원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잇는 계기가 되었구요. 기회가 된다면 마을에서 못다 했던 것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을이 완벽하고 이상적인 것만 있지는 않겠지만 다양한 곳에 그런 기반이 많이 있을 테니, 매체가 생기면 많이 참여해보겠습니다.

연) 좋은 이야기 들려주어서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 서로 응원하면서 한발 한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을 이야기가 잘 영글어지길 바랍니다. 참여해 주셔서 모두 고맙습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6월의 주제는 마을미디어, 마을기록, 마을이야기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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