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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띄우는 글] ‘미처’

2022-09-05

2022년 9월_‘미처’

‘미처’는 채 다다르지 못한 시간과 거리, 이해, 행위 등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미처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미처 가닿을 수 없었다, 미처 몰랐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다 아쉬움, 안타까움, 못 미침의 후한을 나타낸다. 미처 살피지 못한, 미처 알지 못한, 미처 이해하지 못한 일들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사는지. 완전할 수 없는, 완벽할 수 없는 우리 누구나 어느 때든지 쓸 수 있는 말이기에 우리는 인생의 마무리까지 ‘미처’라는 표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미처 하지 못한 일, 미처 깨닫지 못한 것,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내가 미처 다다르지 못한 그곳에 누군가는 다다랐을 것이고, 그가 미처 하지 못한 일을 누군가는 했을 테고, 또 그가 미처 몰랐던 것을 누군가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보여주는 사람, 내가 듣지 못한 것을 들려주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시켜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그렇게 보면 세상은 서로 서로에 의해서 채워진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를 공간의 그림으로 상상해보면 ‘미처’로 그려지는 못 미침의 거리가 개인이 아니라 다수의 관점에서 보면 신기하게도 다 메워질 수 있다.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나의 한계에만 몰두하고 있으면, 아니면 나의 능력이나 생각만 내세우다 보면, ‘미처’의 빈자리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미처’로 빚어지는 아픔과 실패가 있다. 그 자리에 이미 다다른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떨까. 그의 도움과 지혜로 나의 ‘미처’가 채워지지 않을까. 혼자서는 극복할 수 없는 ‘미처’의 그 자리에 다른 사람들의 존재와 역할이 있다.

세상에 ‘미처’의 자리가 점점 커져 블랙홀처럼 되지 않고 서로 서로의 연결로 메워져갔으면 한다. 한 개인이나 한 모임은 부족하더라도 둘, 셋은 그 부족을 채워줄 수 있으니. 그것이 공동체의 진정한 가치이자 힘이 아닐까 한다.

글/사진_ 연인선(용인시 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