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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띄우는 글] ‘이토록’

2022-10-31

2022년 11월_‘이토록’

이토록 놀라운 자연의 변주에 숙연해지는 늦가을이다.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인간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신비스런 조화에 머리가 숙여진다. 새삼스레 다채로운 자연의 색채, 새삼스레 고마운 자연의 열매, 새삼스레 깨닫는 자연의 섭리는 가히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자연(自然), 한자로 풀어보면 ‘스스로 그러함’이니 뭐라 토를 달 여지도 없는 세상의 근본이다. 생기고 사라짐, 나고 자람, 돌고 이어짐, 비워짐과 채워짐, 이 모든 흐름이 자연이다. 우리도 이 흐름 안에 있을 뿐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만큼 우리도 그런 아름다움의 요소를 지녔을 터이다. 자연이 아름답고 위대한 것은 아무리 작은 꽃이나 풀, 새라고 하더라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녔고,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저마다의 개성으로 아름답고 그 조화로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 아니라면 우리가 맞이하게 되는 건 불행이다. 서로가 서로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해치는 경우에 말이다. 종종 내 잣대, 이 기준, 저 기준으로 각각의, 각자의 아름다움이 묻히고 질식되어 가지는 않는지.

이토록 고마운 자연 속에서 숨 쉬며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우리가 딛고 사는 땅,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먹고 입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근원이 자연에 있다. 거저 얻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잘 모르듯 우린 이 고마움을 잊고 살아갈 뿐이다. 자연의 재앙이 올 때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자연의 위력을 처절하게 깨우치곤 한다. 자연에 고마워하며 자연이 더 이상 병들지 않도록 애쓰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모두의 각성과 수고 없이는 이만큼의 유지가 오래 갈 수 없으리라는 예측은 실로 심각하다.

이토록 귀한 자연에서 우리는 생명을 얻고 삶을 이어간다. 돈과 경제, 성공, 편리함과 나의 편의만 귀하다고 여기는 아등바등 어지러운 세상에서 진짜 귀한 것이 무엇인지 자연을 통해 차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기다. 내게, 우리에게 진짜로 소중한 것은 놓치고 허황함에 한 눈 팔고 있지 않는지, 심지어는 눈멀어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때다. 흰 구름 예사롭지 않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라. 오색 단풍으로 물든 나무와 숲에 눈을 두어 보라. 강, 들, 산 그 의연함을 바라보라. 들풀과 들꽃을 살펴보라. 그 시선을 내게로, 이웃에게로 이어보라. 나도 자연에 들어서고, 이웃도 자연에 들여 놓고 ‘스스로 그러함’의 자유를 허하는 맑은 희열을 맛볼 수 있도록.

이토록 좋은 자연에 기대어 소리 없이 웃음지어 보자.
편안히 수시로 마을길에서, 마을 소공원에서, 마을 언덕에서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 속 마을, 마을 속 세상이 자연, ‘스스로 그러함’을 닮아가도록.

글/사진_ 연인선(용인시 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