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을에 띄우는 글] ‘제3의 힘’

2022-05-06

2022년 5월_‘제3의 힘’

귀가 먹먹해지면 정신도 마음도 따라서 먹먹해진다. 눈이 침침하면 생각도 침침해진다. 몸의 일부인 귀나 몸이 먼저 상태가 나빠져서가 아니라, 몸 전체의 상태가 나빠진 것이 귀나 눈으로 표출되는 것이거나, 아니면 귀나 눈의 문제가 몸의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 몸 안이든, 몸 밖의 자연계에서든 에너지의 순환이 막히면 문제가 발생한다. 이해할 수 없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기가 막힌다’라고 하는 우리 말 표현이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부의 동인으로 인해 내 몸 안을 도는 기가 막히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가 이렇듯 우리 몸에서부터 자명해진다.

가족에서도, 사회에서도, 마을공동체에서도 관계의 연결이 막히고 끊기는 지점들이 문제나 어려움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 된다. 몸 안의 순환을 위해서는 운동을 하기도 하고 약을 먹기도 하는데, 사람들 간의 소통을 위해서는 무엇이 운동의 역할, 약의 효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특히 요즘같이 세대, 계층, 각종 그룹 간의 단절과 불통이 만연되어 있는 세상에서 소통을 위한 대화의 기술을 배운다 한들 제대로 약이 되기가 쉽지 않다. 과연 무엇이 도움이 될까?

이열치열의 처방이 답이 아닐까 한다. 열을 열로 다스린다는 자연의 음양조화를 근거로 하는 생활의 지혜가 관계의 문제, 관계의 병에서도 통할진대, 관계의 문제는 관계로 풀 수밖에 없다. 기존의 관계가 단절되어 어려움을 겪는다면 새로운 관계를 도입해 해결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할 터이다. 관계의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가족관계에서보다 개입과 간섭이 적은 친구관계에서 소통이 더 원활한 경우가 많다. 가족관계에서도 부부 간의 완충지대를 자녀들이 만들어주기도 하고, 부모자식 간의 완충지대를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이 만들어주기도 한다. 예부터 있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에서 이미 사회의 완충지대가 확인된다.

마을공동체가 바로 이웃사촌의 완충지대가 되어줄 수 있다는 말인데, 과거의 이웃사촌과는 또 다른 구조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관계의 완충지대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물건도 제도도 정책도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가족의 틀이 변형되고 해체되어 가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과 실체가 사라져가는 마당에 외롭고 지친 개인들에게 새로운 관계망과 관계의 틀이 필요해졌다. 마을공동체의 역할과 의미를 여기에 두고 새로운 관계의 틀을 짜는 시도들이 더 다양하고 많아져야 할 것 같다. 세대나 개인의 취향과 요구에 걸맞게 관계의 짜임새가 더 다채로울 필요가 있겠다.

관계를 짜는 마을공동체, 관계를 디자인하는 마을공동체에서 지금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갈 제3의 힘이 생길 것이라 기대한다.

글/사진_ 연인선(용인시 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