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띄우는 글] ‘헤픔’
2022-06-022022년 6월_‘헤픔’
어느 날 동네 길을 걷다가 큰 단지 아파트 담을 따라 꽃 중의 꽃이라 할 만한 빨간 장미가 뒤덮인 풍경을 보며 갑자기 장미가 헤픈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헤픈 빨간 줄장미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장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화려함에 쉬이 혹하는 사람들의 욕심이 장미마저 헤프게 피도록 만든 것 같아서이다. 장미는 한 송이 장미일 때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그 한 송이를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을 때 말이다. 줄장미는 한 송이의 아름다움보다는 무더기의 화려함이 돋보이나 그나마도 요즘은 너무 흔해 귀한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는 헤픈 것이 참 많다. 구매욕을 부추기며 시장에 넘쳐나는 물건들이 그렇고, 정제되지 않고 남발되는 미디어의 자극적인 언어와 가십성 정보들이 그렇고, 심지어는 벌기 위해 안간힘 쓰는 돈조차 헤픈 지경이다. 헤프다는 말이 부정적인 이유는 본래의 가치가 존중되거나 유지되지 않는 데서 온다. 뭐든 아끼지 않고 많이 쓰일 때 헤프다고 하는데 우리의 삶에서 귀한 줄 알고 아껴 써야할 것들이 헤프게 된 상황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싶다.
환경문제가 심각한 요즘 우리가 헤프게 쓰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일상에서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펑펑 쓰는 물, 전기, 기름뿐이겠는가. 유행에 따라 소비하는 옷을 비롯하여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온갖 물건들이 헤픈 소비문화에 우린 너무 길들여져 있지 않나. 그러다보니 정보도, 말도, 생각도, 지식도, 오락도 받아서 그냥 소비한다. 웃음이나 정이 헤프다는 경우에도 많은 것이 도를 넘었다는 표현이어서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인간적인 안타까움이 가미되어 있다.
뭐든 헤픈 경우에는 그 본래의 소중함이나 귀함이 앗아져간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자연과 함께 누리고 지켜야 할 우리 삶의 본질이 갖는 가치도 아름다움도 잃어간다.
헤픈 줄장미를 보면서 한 송이 장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아쉽고 그리워진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 사람의 가치를 소중하게 느끼고 존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사람도 나도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 아닐까.
주변에서 헤픈 것들 사이로 소중함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많아지면 좋겠다.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마을에서도.
글/사진_ 연인선(용인시 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
- 이전 글
- [마을에 띄우는 글] ‘제3의 힘’
- 다음 글
- [마을에 띄우는 글] ‘바꿈, 바뀜’